J's 끄적거림

왜 시티만 가면 남자들이 꼬이는지

J_the NT 2025. 4. 7. 00:10

교회를 가는 길이었다.
길 가에 창문을 연 채로 서 있던 반짝이는 검은색 폭스바겐 차에서 약간 어눌한 한국어가 들렸다.

"갠차나?"


예전이면 '뭐가 괜찮아? 뜬금없군' 이 생각이 들었을텐데
오늘은 그 딱 한 마디 말 만으로도
그 말을 하는 사람의 출신국가를 쉽게 추측할 수가 있었다


사람의 경험은 이래서 중요한가보다
경험을 해야 데이터가 쌓이고
세상을 더 잘 분석할 수 있게 된다
또 더 잘 알게 되고.



같이 일하는 동료 중 나에게 정말 똑같이
"갠차나?"이런 사람이 있었기 때문에
그 때도 첫 느낌은 그랬다
'뜬금없이 뭐가 괜찮냐는거지?'



알고보니 그 괜찮냐는 말은 걔네한테는
how are you 같은 안부 인사 느낌이었던거다

난 그래서 그 동료에게 동료네 나라의 말로는 뭐냐고 물었더니
나빠빠 라는 귀여운 말을 알려주었다



그 검은 폭스바겐남은 나에게 어디가냐며
자기가 한국에 있었다고
시간 있냐며 커피 한 잔 하자고
남친있냐고 계속 말을 걸어왔다


바쁜 건 아니었지만 굳이 새 인연을 만들 생각도 없었고
남편이 있어 라고 굳이 말하지 않아도
내 왼손약지가 말하고 있었고
거기다 날씨는 쌀쌀했기 때문에
거기 조금도 더 오래 서 있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나중에라도 커피하자는 남자분께
친구 만날거고 친구가 오고있고 예배 드릴거다
좋은 하루 보내시라 말씀드리고 교회 카페로 향했다




카페 갔을 땐 다른 자리도 많은데 어떤 남자분이
내가 앉은 테이블 내 맞은편에 앉으시질 않나.
그러다 액자를 건드셨는지 옆에 있던 액자가
내가 시킨 찻잔과 주전자 쪽으로 휙 엎어졌는데
다행히 깨진 것도 흘린 것도 없어서
그냥 액자만 세워놓는데 나한테 괜찮냐고 물으셨다


난 걍 괜찮다 하고 액자 세운 후에 원래 하던 대로
폰을 보며 걍 신경쓰는 게 귀찮아서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았던 것처럼 독서하고 게임하고 하던 거 했더니
머쓱하셨는지 다른이유인지는 모르겠지만 일어나서 가셨다



교회에선 친구 자리라고 한 자리 남기고 앉았는데
다른 자리도 많은데 다른 남자분이 내 옆인 그 자리에 앉질 않나
그래서 친구 왔을 때 자리를 옮기니 쳐다보시더라



시티 나갔다가 커피 한 잔 하자는 남자분들을 본 게
벌써 다섯번째다
내가 그렇게 막 예쁘다 생각하지도 않는데 웃긴다
왜 이렇게 많아
다섯 손가락을 다 채워버리네



남자로 태어나면 본인이 적극적이어야만
인연을 만들 수 있기 때문에 그렇다는 걸 알기에
공주병에 걸리진 않으려 한다


하지만 아주 약간은 우쭐해지기도 한다
난 그렇게 날씬하거나 인플루언서들처럼 예쁜 것도 아닌데
왜 그러는지, 내가 과하게 입은 거였는지도
돌아보고 생각하기도 한다


근데 결론은 뭐
그러든말든,
나에겐 그냥 가끔 일어나는 해프닝? 이벤트?
돌이켜보면 괜히 웃겨서 떠올리며 히죽 웃을 수 있는
하나의 일상 사건이 남는 것 같다.



그 분들이 말을 걸었다는 게 웃긴 게 아니라
그 상황에서 그래도 거절당할 가능성을 두고도
용기를 낸 그 분들의 모험심에서
인간의 원초적 본능인 호기심과 실험정신을 느끼는데
그 호기심과 실험정신은 내게도 존재하는지라
그게 다른 방향으로 발현되는 점이 재밌는 것 같다
그러니까 근원지는 같은데 도달하는 목표지점이 다른거?



그리고 방금 전까지도 아예 인연도 없고 모르던 사람인데
그러게나마 이어지는 대화라는걸 했다는 점도 웃긴 것 같다
또 그런 경험이 늘어가는 것도 웃기다
대체 왜???????싶고



난 그렇게 생각한다
내가 거절을 하더라도
나랑 그 분은 대화를 통해 사회적 교류에 대한
욕구를 어느 정도는 채웠다고


인간은 이어지는 대화를 통해 활성화되는 뇌 부위가 있으니
핑퐁이 되는 대화를 통해 각자의 뇌가 어느정도
활성화가 되었음이 분명하고
그로 인해 각자가 얻는 이점도 분명했다는 걸
그걸로 각자 조금은 더 힘을 얻은 하루를 보낼 수 있었다고



그러니 말을 걸어준 분께도 감사하고
대화를 어느정도 이어갔던 나에게도 잘했다고 생각한다
결과는 항상 정해놓은 상태지만




근데 진짜 궁금하다
대체 무슨 생각으로 말을 거신건지에 대해
그 사람 본인이 생각하는 답을 들어보고 싶긴 하다


동시에,
막상 들으면 뻔하고 재미없는 말,
원래의 진심을 추측할 수 있어서 김이 새는 그런 말일까봐
아예 듣지 않고 싶기도 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