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래도 난 애를 별로 안 좋아하는 것 같다
그렇다.
예쁜 아이를 보면 예쁘긴 예쁜데 내가 키우고 싶은 마음은 안든다.
난 충분히 아이를 예뻐할 수 있다
그게 진심이 아닌 것도 아니고, 마음으로 예뻐하기보다는 진정으로 그 아이가 잘 되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당연히 익혀야 할 매너(누군가를 때리면 안된다든가, 자기가 어지른 것은 자기가 책임지고 정리해야 한다든가 등등)를 익히게 하려 하고 또 (그럴 약간의 권한이 주어진다면) 그렇게 강압적으로 뭐라하지도 않으면서 아이가 그걸 따르게 할 수도 있다.
아이를 무조건 오냐오냐 하며 키우는 지인들은 나를 조금 불편해한다.
나는 (이해 가능한 나이가 된)아이가 버릇없이 굴거나 공중도덕을 지키지 않으면 정색을 하고 상대하지 않는데, 보통 아이들은 관심을 받고싶은 욕구가 커서 그 경우 자기 행동을 수정한다.
그러나 부모가 아이의 나쁜 행동에 관심 차단이 아닌 '그러면 안되요 우쭈쭈 그거하지 말고 엄마가 너 좋아하는 과자/아이스크림/티비/핸드폰 등으로 줄게' 이런 부모를 가진 아이들은 절대 민폐행동을 고치지 않고 자신이 원하는 걸 받을 때만 잠시 그만두는 척 했다가 원하는 게 생길 때마다 다시 나쁜 행동이라는 카드를 꺼내든다.
어제 만난 친구는 그런 타입의 부모는 아니었다.
오히러 방관형에 가까운 느낌인데, 육아에 지쳐서 아이의 에너지가 넘치는 것에 뭐라 하질 못하는 느낌이었다.
아이가 나를 몇 대 때리길래 (여자앤데 힘도 좀 세더라) 나도 장난으로 아이를 정말 살살, 비슷하게 같은 부위를 톡톡 때리면서 이모가 ㅇㅇ이 이렇게 때리면 ㅇㅇ이는 기분 좋아? 라고 두번 정도 말하니 아이가 그 행동을 그만두었다.
그 정도의 머리는 있는 똑똑한 아이였다.
또한 친구도 모든 걸 나에게 맡긴 듯이 내버려두었고 아이는 결정권이 나에게 있구나 하는 걸 느꼈는지 가끔 장난스러웠지만 착하고 사랑스럽게 굴었다
내가 집에 가야 한다고 했을 때의 아이의 그 서운한 표정은 정말 귀여울 정도였는데 ㅋ
예쁘고 사랑스러운 아이였다
나의 에너지가 그만큼 못 따라가서인지,
내가 아이를 그만큼 좋아하지는 않는 것인지.
친구는 나에게 2세 계획 없냐고 물었고 남편이 아이 안좋아하냐고 물었다. 내 생각엔, 짝궁이나 나나 비슷하다.
아이를 그렇게 막~~좋아라하고 갖고싶다도 아니고,
그렇다고 아이가 싫다 절대 안 가질거다도 아니다.
그냥 미리 아이가 있으면 생길 이런 저런 일을 예상하고 대비하려는 성향이 비슷해서인지 생각만해도 피곤하니 마음의 준비를 좀 더 해야겠다....아 그러다 없으면 없는대로 강아지 키워야지... 뭐 이런 마인드고, 짝궁이랑 얘기를 해봤는데 짝궁 생각도 비슷한 것 같다.
다만 막연하게 아.. 언젠가는 이 사람이랑 이쁜 아이가 생겼으면... 가족이라고 할만한 그런 형태를 갖추고 이런저런 걸 가르쳐줘야지 이런 마음은 한 켠에 있긴 한 것 같다.
강하게는 아니고 그냥 막연하게.
아이는 제비뽑기랑 같아서 내가 딱 원한 그 모습대로 나와주지 않는다
그 점이, 내가 원하는 종류의 개나 고양이 그리고 그 외형을 골라 데려오는 것과는 많이 달라서 생각한 것과 다른 아이가 나오면 많이 실망할 것도 같다.
만약에라도 생긴다면 신랑얼굴을 닮은 예쁜 딸이었으면 좋겠다.
키우는 것에 있어서도 의견이 조금 다르긴 하다.
난 엄하게 많은 것을 가르치며 높이 올라갈 수 있는 날개를 달아주는 일에 집중하려는 성향인데 신랑은 감정을 케어해주고 사회생활의 중요성을 일러주고 노는 것과 즐기는 것을 알려주려는 것 같다.
나는 아이가 지루해하지 않으면서도 교육적인 것들을 많이 알려줄 수 있고 그럴 자신이 있다. 나랑 시간을 같이 보낸 아이들은 짧은 시간이지만 머리쓰는 것을 배우고, 자기 말을 이해하고 그에 맞춰 어떤 답이든 설명해주는 사람을 얻을 수 있고, 또 새로운 놀이 방법으로 놀라면서도 흥미를 가지게 된다.
아이들은 정말 짧은 시간에도 많은 걸 배운다.
가능한한 부모들이 하는 일에 더 많이 참관시키고 참여시키고 책임을 알게하고 권한을 점차 늘려준다면 시간은 더 큰 보상을 해줄 수 있다고 믿는다.
아이가 짧은 시간에 발전하고 빠르게 적응하는 것을 보는 것은 매우 흥미롭다.
하지만 동시에 난 에너지가 적은 사람이라 금방 지친다.
그래서인지 아니면 내가 아이를 그렇게 막 좋아하지는 않는건지 잘 모르겠다.
친구는 어제 내가 아이와 놀아준 것이 만족스러웠는지 나를 또 부르는데 아이는 귀엽긴 하지만 부담스러워서 적당히 둘러댔다.
난 아직 나를 위해 쓰는 시간이 더 소중하고, 나 스스로의 계발시간을 줄여서 아이와 놀아주는 것에 시간을 쓰는 게 시간 낭비라고 느껴진다.
또한 미래의 있을지 없을지 모르는 아이가 나와 관심사가 다르다면 사실 그닥 서로 할 말도 많지 않을지도 모른다.
물론 난 내 관심사를 아이에게 가르칠 거지만.
현재로서는 그렇다.
아이는 가족의 한 구성원이 되는 것이지 무조건적으로 돌봄을 받아야 하는 (기본적 정서의 지지나 생리적인 걸 빼고) 존재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또한 부모 맘대로 끌고 갈 그런 존재도 아니고.
어디까지나 자기 생각과 자기 뜻이 있는, 독립적인 존재고 세상에 나온다고 해도 엄마의 자궁을 문으로써 빌리는 것 뿐이지 결국 자기 삶을 살기 위해 오는 것이다.
부모는 그 아이가 자기가 살기위해 온 그 삶을 살도록 세상을 가르쳐주고 기본 물품과 팁과 노하우를 알려주는 게임 내 npc 같은 존재랄까.
모든 걸 다 부모에게 달라는 건 게임 거저 먹겠다는 심산이다. 그럴거면 본인이 전생에 나라를 구하든가 해서 현질로 캐릭터를 사왔어야지.
게임은 직접 머리를 쓰면서 지름길을 발견해가는 과정이고 아이는 그런 과정을 헤쳐나가고 즐겨야 한다고 생각한다.
암튼.
나는 아이를 좋아하지도 싫어하지도 않는 것 같다.
그러나 가끔 예쁘고 가끔 성가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