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우던 강아지들 중에도 유난히 기억에남는 애가 있다
애견인이든 애묘인이든 다른 반려동물 선호자든, 살면서 여러마리의 동물을 키우는 일은 생각보다 많다.
그들의 수명이 자연에서 대개 인간보다 짧게 설계되어있기 때문이다.
나 역시 그런 사람들 중의 하나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난히 더 기억에 남고, 키우던 당시의 감정이나 기억 하나하나가 잊혀지지 않는 그런 아이도 있다.
아이라고 지칭함은, 단순히 개나 고양이 등이라 말하기엔 애완동물의 종류가 너무 많기 때문이고, 또 반려동물을 키우는 사람들에겐 반려동물이 아이를 키우는 것과 흡사한 경험, 느낌을 주기 때문에 통칭으로 그냥 아이라고 해야겠다. 하지만 역시 아이라고 지칭할 때마다 조금은 어색한 느낌이긴 하다.
어쨌든 유독 기억에 남는 한 아이가 있다.
기억에 남는 이유는 많다.
인생의 거의 20년이라는 시간, 1/4 정도를 함께 했기 때문이기도 하고
또 그 아이가 다른 아이들과 차이점이 너무 컸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 아이, 나의 천사는.
...
보낸 지 1년이 다 되어 가는데도 그 아이를 생각하면
마음이 울컥하고 눈물이 난다
난 아주 어릴 때를 빼곤, 키우던 동물이 사라지거나 죽었다고
크게 슬퍼하는 사람이 아닌데.
다른 아이가 갔을 때는 조금 신경쓰이고 미안하고 말았는데.
그 아이는,
음식에 관심이 없었다 몇 일 내내 먹지 않고도 초연했다
사랑받고 옆에 있는 것에만 관심이 있었다
목욕을 오래 안해도 냄새가 없었다
늘 화장실에만 볼일을 보았다
머리가 좋아서 뭐든 해냈다
오기가 있었고 끈기도 있었고 의지도 강했다
거의 짖지 않았고 말하지 않아도 눈치로 언제 짖어야할지를 알았다
사람 말을 하려고 시도했었다
늘 새로운 것을 탐구하고 호기심이 강했다
어깨 위에 기어 올라가 네 발로 서서 균형을 잡을 줄 알았다. 그리고 그걸 좋아했다
거울을 보면 울었다
볼 일을 볼 때면 똥도 한 자리에 줄 세워서 정돈해서 누곤 했고 결벽증이 있나 싶을 정도로 깔끔을 떨었다
밥을 주면 늘 밥 주변으로 입만 닦다가 보통은 먹지 않았다
표정이 다양해서 무슨 생각하는지 표정으로 알 수 있었다
실수로 발톱으로 내 눈을 긁었는데 덕분에 시력이 좋아졌다
늘 부지런했고 나이가 들어서도 늘 부지런하게 움직였다
늘씬하고 몸도 부드럽고 유연하고 털도 비단같았다
온 몸이 금빛 은빛으로 반짝거렸고 동그란 이마에 작은 주둥이, 반짝이고 도톰한 까만입술과 다양한 표정을 만드는 큰 눈과 마른 몸에 털만 가득한 엉덩이와 날씬한 다리들, 하얗고 긴 속눈썹이 매력적이었다
5시간 이상도 기다릴 줄 알았다
현재가 아닌 미래를 대비하는 아이였다
목욕을 할 때도 늘 얌전하고 어른스러웠다
기관지 협착으로 인한 기침을 얹힌걸로 오해한 내가 등을 두들겨 오히려 더 아파졌는데도 멀리 갔다가 부르니 옆으로 왔다
주인을 무한히 신뢰하고 스스로를 맡기는 충성심이 있었다
자기가 집안의 가장인 것처럼 가족 모두를 챙기려 들었다
나이들어 아파서 약을 먹고 헤롱대면서도 엄마가 걱정할까봐 부지런히 걸어다닌 아이였다
늘 한결같았고 꾸준했고 성실했다
잠을 제대로 자는 걸 본 적이 없다. 가족 누군가라도 움직이면 바로 따라나왔다. 단 한 번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새벽이든 낮이든 아침이든
내가 짝을 데려왔을 때 바로 알았다
가족 중 누군가가 외출하면 늘 현관 바닥에서 웅크리고 그 사람이 돌아올 때까지 기다렸다
내가 짐을 쌌을 때 떠나는 걸 알았고 그 열어둔 짐 싼 가방 안에 들어가서 내가 발견하기 전까지 오랜시간 웅크리고 자는 척 하고 있었다
그 아이는 뭐든지 알았다 가족에게 일어나는 일은.
극장을 가든 도서관을 가든 비행기를 타든 음식점을 가든 나오면 안되는 장소에서는 눈치로 알아채고 가방 안에서 없는 듯이 소리도 내지 않았고 얼굴조차 내밀지 않았다. 아마 출근할 때 데려갔어도 그랬을 것이다
늘 꼬리를 바닥으로 내리고 다녔다. 신이 나면 평행으로 올렸다
항상, 집 안에서도 어딜가든 시야에 있었다. 스스로의 일로 바쁜 적이 없고 항상 가족일에 적극적이었다. 먹다가도, 놀다가도, 가족이 움직이면 바로 따라왔다. 단 한 순간도 온전히 스스로의 시간을 즐긴 적 없이 24시간 풀근무를 평생 했다.
컴퓨터를 하면 컴퓨터 위에 앉으려 했고, 책을 보면 책 위에 누우려 했고, 고스톱을 점수계산 할 때까지 옆에서 기다리며 관전하다가 귀신같이 그 타이밍을 알고 난입해서 흐트러트려놓았다
책장을 넘겨서 자기 위로 책이 무거워도 꿈쩍도 안했다
장을 봐오면 고개를 들이밀고 가방 안을 항상 샅샅이 확인하고 조사했다
달달한 음식보다 씁쓸해도 몸에 좋은 음식을 더 선호했다
몇 일을 굶더라도 주인이 씹어주는 음식 혹은 손 위나 숟가락 위에 올려주는 음식 외엔 안 먹으려 했다
가끔 성경을 읽었고(성경을 펴놓으면 그 앞에 앉아있었고) 교회에 데려가도 설교 내내 앞을 보며 착실하게 예배를 드렸다
거세하지 않았는데도 엄마 손만 좋아했고 총각으로 살다갔다
옆에 암컷이 있어도 별로 관심이 없었다
낯선 사람도 가족과 대화하고 있으면 짖지 않았다
이렇게 텍스트로만 남길 수 없는 부분들이 더 많은데
가장 기억에 남는 건
정말 몸이 힘들었을텐데도 가기 바로 직전까지 걱정 안시키려고 걸어다니고 움직이려 했다는 점이다...
노견을 가진 견주로서 많은 검색을 했지만
대부분은 가기 전에 오래 누워있다가 간다는데
아파서 병원도 왔다갔다 하고 약에 헤롱대고 그러면서도 마지막까지 걸어다니고 성실하게 꾸준히 움직이는 모습 보여준 건
왠만한 사람들보다도 더 대단하고, 내가 본받을 점이라 느꼈다
여러 개를 키워왔지만
그런 아이를 또 만날 수 있을지 확신이 없다
P, 우리 또 만날 수 있을까?
보고싶다...
여전히 사랑해